KDI(한국개발연구원)가 내놓은 전망이 경제면 머리기사에 올랐다. AI 확산으로 향후 10년간 생산성은 3.5% 올라가지만, 일자리는 25만 6천 개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숫자의 온도가 어떻든 방향은 분명하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사람이 해내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고, 뒤집어 말하면 남아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시간이 회사의 사실상 전부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회사에서 그 귀한 시간이 어디로 새는지 들여다보면 허탈해진다. 회의 자료보다 비품 주문에, 고객 응대보다 점심 메뉴 취합에 시간이 쓰인다. 매일 정오마다 “오늘 뭐 먹지”로 시작해 주문, 수령, 정산까지 이어지는 반복 업무는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는 비용이다. AI 도입을 논하기 전에, 이런 반복 잡무부터 시스템으로 넘기는 것이 순서다. 수십 명의 끼니를 매일 손으로 챙기는 대신 회사 도시락을 정기 계약으로 돌려 두는 식의, 작지만 매일 쌓이는 결정 말이다.

생산성의 적은 AI 부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반복’이다
KDI 전망의 핵심은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업무부터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채용 시장보다 회사 내부에 먼저 적용해 볼 만하다. 우리 회사에서 매일 또는 매주 똑같이 반복되는 일이 무엇인지 목록을 만들어 보면, 의외로 ‘운영 잡무’가 상위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식사는 빈도가 가장 높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 직원이 관련되며, 매번 의사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결정을 매일 새로 하는 회사와, 한 번의 계약으로 한 달을 커버하는 회사의 차이는 시간만이 아니다. 매일 주문은 단가 협상력이 없지만, 정기 도시락처럼 기간을 묶은 계약은 수량이 예측되는 만큼 단가와 식단 품질에서 유리해진다. 총무 담당자의 하루 30분이 돌아오는 것은 덤이다.
우리 회사 운영이 ‘수동’이라는 신호
- 점심 주문·취합 담당이 사실상 지정돼 있을 때
- 식대 정산이 월말 법인카드 영수증 뭉치로 처리될 때
- 야근·주말 근무 때 식사가 매번 즉흥적으로 해결될 때
작게 시작해도 효과는 매일 쌓인다
거창한 시스템 도입이 부담스럽다면 빈도가 가장 높은 것 하나부터 정기화하면 된다. 식사가 첫 후보인 이유다. 월 단위로 식수 인원과 예산을 정해 두는 월 도시락 계약은 도입에 공사도 장비도 필요 없고, 다음 달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인원 변동이 잦은 회사라도 주 단위 조정만 반영하면 되니 관리 부담이 매일에서 월 1회로 줄어든다. 식대가 계약 단가로 고정되면 월말 정산도 영수증 뭉치에서 청구서 한 장으로 바뀐다. 생산성이라는 거창한 말의 실체는 이런 것이다—회사의 시간이 반복에서 빠져나와 돈 버는 일로 옮겨 가는 것.
AI 시대에 살아남는 회사는 AI를 먼저 산 회사가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반복 업무에서 먼저 빼낸 회사다.
25만 6천 개라는 숫자는 위협적으로 들리지만, 생산성 3.5%라는 숫자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3.5%는 결국 시간에서 나온다. 오늘 정오, 우리 회사의 시간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부터 확인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