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이 운용 방식에 따라 66%와 2%로, 33배까지 벌어졌다는 조사가 나왔다. 같은 제도에 같은 돈을 넣었는데 결과가 이렇게 갈린 이유는 하나다. 한쪽은 굴러가는 구조 위에 올려 두었고, 다른 쪽은 가입만 해 놓고 잊었다. 방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값을 치르는 선택이다. 회사 운영에서도 정확히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매일 반복되는데 아무도 설계하지 않은 업무는 조용히 비용을 쌓는다. 수십 명의 점심을 매일 ‘그때그때 알아서’ 해결하는 회사가 대표적이다. 인원 취합, 메뉴 결정, 주문 전화가 날마다 누군가의 근무 시간을 깎는다. 회사 도시락처럼 반복을 계약과 시스템 위에 올려 둔 회사와의 격차는, 퇴직연금처럼 한참 뒤에야 눈에 보인다.

방치된 반복에는 이자가 붙는다
33배 격차의 무서운 점은 하루하루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점심 주문에 20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루 20분이면 별것 아니지만, 주 5일이면 100분, 1년이면 며칠 치 근무 시간이 된다. 담당자가 바뀌면 노하우도 함께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관리되지 않는 반복은 이렇게 복리로 비용을 쌓는다. 반대로 공급처와 수량, 도착 시간을 한 번 확정해 두는 정기 도시락 방식이라면, 그 뒤로는 예외 상황만 챙기면 된다. 연금을 잘 굴리는 사람이 매일 시세를 보지 않듯, 잘 설계된 반복은 매일의 관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회사의 점심이 ‘방치 계좌’가 되고 있다는 신호
- 점심 주문 방식이 담당자 개인의 요령으로만 존재할 때
-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고민(오늘 뭐 시키지)이 반복될 때
- 식사 비용이 얼마나 나가는지 월 단위 합계를 아무도 모를 때
격차는 상품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수익률 격차의 원인은 특별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디폴트옵션, 즉 기본 구조의 차이였다. 알아서 굴러가게 만들어 둔 쪽이 이겼다. 회사 식사도 같다. 더 좋은 메뉴를 찾는 것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수량이 도착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수십 명이 함께 먹는 단체 도시락을 구조 위에 올려 두면, 회사는 그 시간과 에너지를 본업에 쓸 수 있다. 사소한 반복일수록 구조화의 수익률은 높다.
방치는 공짜가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일수록, 설계하지 않은 값은 복리로 쌓인다.
퇴직연금 기사를 보고 계좌부터 열어 본 사람이라면, 같은 눈으로 회사의 하루도 점검해 볼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데 시스템 밖에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 그 목록의 맨 위에 있는 것이 대개 점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