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형 유통사가 한국에 구매법인을 세우고 국내 상품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을 본격화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제조사나 소규모 브랜드 입장에서는 단번에 물량이 커지는 기회다. 다만 큰 발주는 좋은 소식이면서 동시에 시험이기도 하다. 한 번에 많이 파는 것과 팔아서 남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급하게 물량을 맞추다 보면 추가 생산비, 급송 운임, 반품 처리비가 뒤늦게 붙어 정산 때 이익이 사라지는 일이 흔하다.

큰 발주가 무너뜨리는 건 대체로 재고다
대량 매입은 보통 납기가 짧고 조건이 까다롭다. 여기서 재고를 엑셀과 감으로 관리하던 회사는 두 가지 실수를 한다. 있는 줄 알았던 물량이 없어서 급하게 더 만들고, 없는 줄 알았던 물량이 창고에 남아 다음 시즌에 헐값으로 나간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손실이 그때가 아니라 몇 달 뒤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발주·입고·출고·반품이 한 화면에서 같은 기준으로 보이는 상태를 만드는 것, 즉 ERP 개발의 목적은 관리 자체가 아니라 이 시차를 없애는 데 있다.
원가는 품목 단위로 알고 있어야 한다
협상 자리에서 가장 불리한 사람은 자기 원가를 모르는 사람이다. 전체 매출과 전체 비용만 알고 품목별 원가를 모르면, 상대가 제시한 단가가 받아도 되는 값인지 판단할 수 없다. 재료비·포장비·물류비·수수료를 품목 단위로 갈라 두면 “이 조건은 여기까지 가능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된다. 대량 매입 제안은 대개 시간을 오래 주지 않기 때문에, 제안이 오고 나서 계산을 시작하면 이미 늦다.
남의 채널로만 팔면 남는 게 없다
직매입은 편하다. 만들어서 넘기면 끝이고 마케팅도 상대가 한다. 대신 고객이 누구인지, 왜 다시 샀는지가 내 쪽에 남지 않는다. 조건이 바뀌거나 계약이 끝나면 매출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대량 거래가 열릴수록 작더라도 직접 파는 자리를 함께 유지하는 편이 안전하다. 매출 비중이 작아도 재구매 주기와 반응을 확인하는 실험실 역할을 하고, 그 기록이 다음 협상의 근거가 된다. 상품 수가 적다면 화려한 기능보다 상세 정보와 결제 흐름에 집중한 쇼핑몰 구축이면 충분하다.
반복 구매가 확인된 뒤에 접점을 넓힌다
순서가 중요하다. 아직 재구매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앱부터 만들면 유지비만 남는다. 반대로 정기적으로 다시 사는 고객군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는 광고비 없이 다시 부를 수단이 필요해진다. 알림과 재주문을 담당할 앱 개발은 그 단계에서 검토하면 되고, 그 전까지는 사이트와 정산 구조를 다듬는 편이 이익에 직접 기여한다.
큰 발주는 실력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미 갖춘 실력을 드러낼 뿐이다.
해외 유통사가 국내 상품을 직접 사 가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회가 왔을 때 웃는 쪽은 물량을 맞출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 맞추고도 얼마가 남는지 아는 회사다. 재고·원가·직접 파는 자리 세 가지 중 지금 가장 흐릿한 것부터 손보면 된다.